개발만 잘하면 되는 줄 알았다 — 일을 잘한다는 건 뭘까
들어가며
요즘 머릿속에 계속 맴도는 질문이 하나 있다.
일을 잘한다는 건 뭘까?
예전의 나라면 답이 단순했다. 코드 잘 짜고, 버그 빨리 잡고, 시키는 거 깔끔하게 쳐내면 일 잘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근데 요즘은 그게 전부가 아니라는 걸 매일 느낀다.
나는 지금 주임이고, 회사에서 PG 개발팀 팀장으로 키워지고 있다. 대표님이랑 개발부장님이 나를 그쪽 방향으로 끌고 가려고 한다. 그 과정에서 대표님이랑 1대1로 대화를 나눴고, 그 뒤로 일을 바라보는 시각 자체가 좀 바뀌었다. 그 얘기를 정리해본다.
개발자는 보통 ‘자동화’부터 생각한다
개발자한테 일을 주면 대부분 비슷하게 반응한다.
“이거 자동화하면 편하겠는데?”
물론 자동화는 중요하다. 반복 작업 줄이고, 사람 실수 막고, 시간 아끼고. 근데 여기엔 함정이 있다. 자동화는 ‘어떻게’에 대한 답이지, ‘무엇을 먼저’에 대한 답이 아니다.
개발자 입장에서 가장 급해 보이는 일과, 회사 입장에서 가장 급한 일은 다를 때가 많다. 기술적으로 깔끔하게 만들고 싶은 욕심이 앞서면, 정작 회사 매출에 직결되는 일은 뒤로 밀린다.
나도 그랬다. 그냥 눈앞에 있는 거, 손에 익은 거, 깔끔하게 만들고 싶은 거부터 손댔다.
우선순위는 결국 ‘매출’과 연결돼야 한다
대표님이랑 얘기하면서 가장 크게 깨달은 게 이거다.
업무 우선순위를 정할 때 기준은 회사 매출이어야 한다는 것.
- 이 일이 매출을 앞당기는가?
- 가맹점을 더 빨리 수용할 수 있게 만드는가?
- 영업팀이 따온 계약을 개발이 발목 잡고 있지는 않은가?
우리 회사는 운영팀도, 영업팀도 잘한다. 영업이 가맹점을 물어오면, 그걸 얼마나 빨리 받아서 서비스로 만들어내느냐가 결국 매출 속도를 결정한다. 그 병목이 개발팀이다. 그래서 지금 이 회사에서 제일 중요한 게 개발팀이라는 생각이 든다. 미리 만들어두고, 빠르게 수용하는 개발팀.
그러니까 팀장의 일은 단순히 “코드를 잘 짜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먼저 만들지 정하는 것이다.
대표님이 말한 ‘팀장의 역할’
대표님이 나한테 이런 말을 했다.
“팀장은 뭔가를 발굴하고 제시하는 사람이야.” “일을 할 때 팀원의 능력치를 파악해서, 보다 빠른 시간 안에 가맹점을 수용할 수 있게 미리 만들어두고,” “다른 일까지 병렬로, 예상 시간보다 빨리 쳐내는 게 가장 중요해.”
이 말을 듣고 정리가 됐다. 팀장은 혼자 다 하는 사람이 아니다.
- 발굴 — 뭐가 필요한지, 뭐가 막힐지 먼저 찾아낸다
- 제시 — 방향을 정하고 우선순위를 잡는다
- 분배 — 팀원의 능력치를 보고 일을 나눈다
- 병렬 — 순차로 쌓지 않고, 동시에 굴려서 예상보다 빨리 끝낸다
핵심은 결국 속도다. 가맹점을 남보다 빨리 수용하는 것. 그게 매출이니까.
가장 어려웠던 건, 지시하는 일
솔직히 제일 힘든 건 기술이 아니었다. 지시하는 것이었다.
내 밑에 동갑인 친구가 하나 있다. 나는 성격상 “그냥 다 내가 하자” 마인드다. 착하다는 소리도 많이 듣는데, 그게 일할 땐 단점이 된다. 누군가한테 “이거 해줘”라고 말하는 게 너무 어색하고 힘들었다. 차라리 내가 밤새서 다 하는 게 마음이 편했다.
근데 그건 팀장의 일하는 방식이 아니다. 내가 다 떠안으면 병렬이 안 된다. 결국 내 속도가 팀의 속도가 돼버리고, 그럼 팀을 둘 이유가 없다.
대표님 말대로 팀원의 능력치를 파악하고 거기에 맞게 일을 주는 것, 이게 팀장의 핵심 역량이라는 걸 받아들이는 데 시간이 좀 걸렸다. 지금도 완벽하진 않지만, “이건 저 친구가 더 빨리할 수 있는 일이다” 싶으면 넘기는 연습을 하고 있다.
그 대화 이후, 바뀐 것들
대표님이랑 1대1 한 지 벌써 한 달이 지났다. 그 사이에 내가 의식적으로 바꾼 게 몇 가지 있다.
1. 메일에 대표님을 숨은참조로 넣는다
이전엔 그냥 일하고 끝이었다. 지금은 중요한 일을 처리하거나 메일을 보낼 때, 대표님을 숨은참조(BCC)로 넣는다.
티 내려는 게 아니다. 내가 어떤 일을, 어느 정도 속도로, 어떻게 처리하는지 대표님이 자연스럽게 알 수 있게 하려는 거다. 말로 “저 일 잘해요”라고 백 번 하는 것보다, 실제로 돌아가는 흐름을 보여주는 게 훨씬 강하다.
2. 성과를 수치화한다
“열심히 했어요”는 아무 의미 없다. 가맹점 수용까지 며칠 걸렸는지, 예상 대비 며칠 당겼는지, 병렬로 몇 건을 동시에 처리했는지. 이런 걸 숫자로 남긴다.
수치화의 목적은 단순하다. 내가 이 회사에서 없어선 안 될 사람이라는 걸 느끼게 하는 것.
직급의 벽, 그리고 기대
지금 내 직급은 주임이다. 근데 대표님 주간회의는 원래 과장급 밑으로는 안 들여보낸다. 그런데 나는 거기에 들어간다.
회사가 나를 PG 개발팀 팀장으로 키우려고 주임, 대리를 건너뛰고 과장으로 올려주려는 흐름이다. 그만큼 기대가 크다는 뜻이고, 그만큼 퍼포먼스를 보여줘야 한다는 압박이기도 하다.
부담이 없다면 거짓말이다. 근데 이런 기대를 받아본 적이 없어서, 솔직히 설레는 마음이 더 크다.
그래도 나는 더 큰 곳을 꿈꾼다
부장님은 나한테 “하루빨리 1차 PG로 가라”고 한다. 더 큰 무대로 가라는 응원이다.
근데 나는 아직 여기서 더 배우고 싶다. 지금 이 회사에서 팀장의 일하는 법을 제대로 익히고, 우선순위를 잡는 감각을 몸에 새기고, 사람을 움직이는 법을 익히고 나서. 그렇게 단단해진 다음에 더 큰 곳으로 가는 걸 꿈꾼다.
조급할 필요는 없다. 지금 받는 기대와 경험이 다 자산이니까.
마무리
다시 처음 질문으로 돌아가서, 일을 잘한다는 건 뭘까.
이제 내 답은 이렇다.
개발을 잘하는 건 기본이고, 무엇을 먼저 할지 정할 줄 알고, 그걸 회사 매출과 연결할 줄 알고, 혼자 다 하는 대신 사람을 움직여 더 빨리 끝내는 것.
코드 잘 짜는 사람은 많다. 근데 “무엇을 먼저”를 아는 사람은 생각보다 드물다. 나는 그 드문 쪽이 되고 싶다.
한 달 전과 지금의 나는 분명 다르다. 한 달 뒤의 나는 또 다를 거라고 믿는다.